영해 동학혁명 신향의 등장과 수탈체제의 강화
임진왜란과 빙자호란을 기친 뒤 위와 같은 사족 중심의 향촌 지배구조는 변화를 보이며 위기에 부딪쳤다. 첫째, 양란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기반의 동요, 둘째, 중앙집권층의 빌열화와 지배층의 분열, 셋째, 농업 생산력의 증대와 이에 따른 화폐경제의 발달에 따른 것이었다.(이해준, 「조선후기 향촌사회배구조의 변화」, 『한국사 -- 중세사회의 해체) 이를 부연해 설명하면 재지 사족들이 문중의 힘과 향약을 이용해 향권을 장악해 평민과 천민을 압제했고, 중앙 권력을 척족세력이 쥐고 일부 벌열가 (國家)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당쟁이 격회되었고, 이앙법(秋法)의 보급으로 잉여농업생산력이 높아졌고, 화폐경제의 발달에 힘입어 잉여 생산물을 팔아 자본을 축적한 요호부농층이 등장해서 향촌 지배구조의 변화를 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