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도시의 조물주 성선생님

엎드려 있었지. 캔버스에 코를 박고나의 주인이 돌아와터널의 끝 마저 그려 주기를 기다리며힐끔힐끔기어들어오는 독사의 긴 혓바닥을 훔쳐보면서터널 중앙에서 말라가고 있었어!살도, 뼈도.


화창한 날이었다. 버스가 터널을 벗어나자 햇살이 눈사태처럼무너져 내렸다. 정류장에서 한 사내가 내리고 한 여인이 오르자 차는 다시 출발했다. 오랫동안 참아 왔던 고백을 하려는 듯 목련은잔뜩 부풀어올라 있고, 담장의 개나리꽃은 운동회라도 맞은 아이들처럼 마구 함성을 질렀다.

 

시계를 보니 한시 오분이었다. 약속 시간까지는 한 시간 반 남짓 여유가 있었다. 광화문에서 내려 지하도로 들어갔다.

언젠가 한번 와 봤던 곳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옛날에는 죽어서나 갈 수 있었던 땅 밑, 그곳으로 살아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을 죽일 요량으로 새롭게 단장을 한 교보문고로 들어갔다. 거울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시집 코너를 무심히 지나는데 낯선 활자가 두 눈 속으로 파고들

었다. 순간 가슴이 저려 왔다. 멈춰 서서 얇은 시집을 빼들었다.

! 나는 미친 듯 살고 싶다.

제목을 한동안 내려다보다가 시집을 들고 카운터로 갔다.


밖으로 나오니 사위가 어둑했다. 언제 몰려왔는지 먹장구름이 허공에 떠 있었다. 파도처럼 밀려가는 인파에 묻혀 걷다 보니 후두둑 빗방울이 쏟아졌다. 24시 체인점 앞으로 몸을 피했다. 들이치는 빗물을 피해 쇼윈도에 바짝 기대며 시계를 보았다.

병걸을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가는 시간을 제한다 해도 아직 한시간 남짓 여유가 있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져 갔다. 비는 쉽게 멈출 것 같지 않았다. 빗속을 뛰어다니는 우산장수의 분주한 몸짓을 눈으로 쫓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 건물 이층에 다방이 보였다. 그 아래층은 식당이었다. 점심 식사를 할까말까 망설이다가 다방으로 단숨에 뛰어올라갔다.

다방 안은 썰렁했다. 창가 끝쪽에 두 아가씨가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고 중앙 테이블에는 두 명의 중년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붙어 있는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