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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도시의 조물주 성선생님 긴 머리의 아가씨는 창백한 얼굴로

이봐, 아가씨. 담뱃불 끼! 여섯번씩이나 낙태하고서 무슨 줄담배를 펴!”

"
네에?"

창문에서 시선을 거둬 맞은편 테이블을 보았다. 키가 작고 들창코에다 눈이 길게 찢어진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눈에 띄었다. 주름 진 회색 바바리코트에 양손을 찔러 넣은 그는 느릿느릿두 아가씨가 앉아 있는 테이블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한순간 광채가 번뜩였다.

재빨리 아가씨의 표정을 보았다. 새로 붙인 담배를 엄지와 검지손가락에 끼우고 있는 긴 머리의 아가씨는 창백한 얼굴로 사내를 멍히 올려다보았다. 눈가에 검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걸로 봐서 건강한 육체를 지니고 있는 여자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성 선생님, 그만 가시죠.”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 쪽으로 갔던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내가 다가와 그의 팔을 조심스레 잡아끌었다. 마담과 종업원 아가씨들도 텔레비전을 보다 말고 왜소하고 남루해 보이는 사내와 말끔한 정장을 한 건장한 신사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 말이 틀리나, 아가씨? 아가씨는 사흘 전에 여섯번째 낙태수술을 했지?”

성 선생이라고 불리는 사내는 일행으로 보이는 중년 신사의 말은 무시하고 마치 못질을 하듯이 또렷또렷하게 말했다. “허억!”

스물다섯이나 여섯쯤으로 보이는 아가씨의 입이 벌어지며 눈동자가 확대됐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담배가 스르르 탁자 위
로 떨어졌다.


"
이상한 아저씨 다 보겠네! 얘가 담배를 피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가자, 소희야!”

등을 보이고 앉은 커트머리 아가씨가 재빨리 담배를 집어서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했다. 그녀는 옆자리에 놓여 있는 핸드백을 들고 일어섰다. 어깨 뒤로 길게 머리를 기르고 안경을 쓴 아가씨가 서서히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앉으…… 세요.”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던 그녀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와락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아가씨가 슬그머니 주저앉았다.

, 앉으세요!”

창가 쪽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커트머리 아가씨가 말했다. 원숭이의 두상을 연상시키는 사내는 주저없이 울고 있는 아가씨 맞은편에 앉았다. 중년 신사도 망설이다가 울고 있는 아가씨 옆자리에 엉덩이를 걸쳤다.

아가씨, 자신의 육체라고 해서 그렇게 학대하면 안 돼! 그건 죄악이야. 인간의 몸을 지니고 태어났으면 최소한 네 가지 죄는 저지르지 말고 살아야 해.”


네 가지 죄가….… 뭐예요?”

커트머리 아가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가지 죄란 육체관리소홀죄, 육체운행불량죄, 육체구조무지죄, 육체기능무지죄를 말하는 거야. 보아 하니 이 아가씨는 네 가
지 죄를 모두 범했구만, 죄를 그렇게 많이 졌으니 몸이 성할 리 있나.

아가씬 요즘 자고 일어나면 몸이 붓고, 허리가 결리고, 뼈마디가 쑤시지? 생리불순에다 현기증도 일고 말야! 편두통도 자주 찾아오고, 특히 왼쪽 무릎이 얼음이 박힌 듯 시려서 걸음을 제대로 옮길 수도 없잖아?

아가씨는 낙태수술을 받은 후유증이려니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번엔 그렇지 않아! 아가씨의 육체는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자생력을 잃어버렸어. 이대로 방치해 두면 생명이 위태로워! 아가씨는 자신이 숨을 쉬고 있어서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볼 때는 걸어다니는 송장이야! 세상 그만 살고 싶어?"